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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로칼리지]판을 흔들던 기획자에서, 숲을 기다리는 디벨로퍼로 - 협동조합 청풍 유명상이 말하는 ‘자리 내어주기’와 10년의 자생력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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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칼리지 특별 인터뷰] 지역변화학교 '로칼리지' 강연자로 나선 협동조합 청풍 유마담(유명상)을 지난 7월 30일 만났다. 청풍은 2013년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의 화덕피자집 '화덕식당'에서 출발한 청년 조직이다. "강화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인 문화기획자, 힙합 래퍼, 경영학도 등 다섯 청년이 만든 '청풍상회'가 그 모태였다. 이후 게스트하우스 '아삭아삭순무민박', 커뮤니티 펍 '스트롱파이어', 지역 체류형 프로그램 '잠시섬', 로컬 굿즈 상점 '진달래섬'을 차례로 열며 활동 영역을 넓혔고, 2021년에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지원사업을 계기로 '로컬, 주체성, 존중, 다양성, 소통, 재발견, 생태, 환경, 안심, 즐거움, 연결'이라는 열한 가지 '뉴로컬 키워드'를 갖고 '강화유니버스'라는 세계관까지 구축했다. 2023년부터는 새로운 대표 '파도'가 조직을 이끌고 있고, 유명상은 현재 이사로서 함께 하고 있다.

인터뷰는 AI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십수 년에 걸친 청풍의 궤적과 그 안에서 유명상 본인이 겪은 좌절과 전환의 순간들로 이어졌다.


인터뷰 및 정리 : 박누리(농촌기록활동가)


AI 이후, 선후배가 사라지고 동료가 남았다

유명상은 "AI가 등장하면서 청풍 조직 풍경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로 이야기를 열었다.


"예전에는 미션과 비전을 동료에게 계속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함께 일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동기화’ 과정 자체가 사라졌거든요. 대신 서로의 방향이 얼마나 잘 맞는지, 어느 수준까지 맞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써요."


예전에는 새로운 구성원을 위한 일 학습을 조직의 선배 동료가 맡아야 했다면, 지금은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한다. 그래서 오히려 각자의 비전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청풍은 이 변화 위에서 협업의 스펙트럼을 새롭게 짰다. 아주 가볍게 참여하는 '파트너', 단기로 함께 성장하는 '크루', 밀도 있게 투입되는 '팀 청풍', 그리고 '리더 그룹'까지 층위를 나누고, 누구든 그 사이를 오갈 수 있게 했다. 개개인의 지향에 맞춰 프로젝트 단위로 결합하고, 그 결합의 정도 역시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프로젝트의 밀도가 높으면 다 같이 높은 상태로 가야 했는데,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요. 대신 확인해야 할 건 '내가 이걸 할 준비가 됐냐'예요."


이 변화 속에서 가장 크게 사라진 건 '선배'라는 자리다. 


"가령 예전에는 제가 인터뷰 작업을 하면 새 구성원이 옆에서 보조하면서 배우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이해시켜야 해요. 평소에 관심이 있었는지, 학습할 준비가 됐는지가 먼저고, 그게 되면 이 일의 전과정을 다 목격하지 않아도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어요."

대신 반드시 필요한 건 공감이다. 시켜서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철학과 가치관의 동기화가 몰입의 전제가 된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결을 맞추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러면서 선후배 대신 동료라는 감각이 더 뚜렷해졌다는 그는, 자신을 “먼저 알고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선배라는 지위가 주는 힘이나 권위 대신, 그저 지역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동료들과 더 즐겁게 일하기 위한 자리매김일 테다. 


이 유연한 구조는 청풍이 낯선 실험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이미 기반을 다진 조직일수록 새로운 시도를 꺼리기 마련이지만, 청풍은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일하는 방식의 전환을 통해 조직 안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곧 구성원 모두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이다.

"저희가 진단했을 때, 청풍에서 아쉬웠던 건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등장하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안 되고, 새로운 사람이 와야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에너지가 생기거든요. 저도, 파도도 다 긴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텐션을 유지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요."


파도에게 리더십을 넘기다

2023년, 청풍의 리더십은 유명상에서 '파도'로 넘어갔다. 로컬에서, 특히 남성 리더가 자신이 일군 자산을 다음 세대 - 그것도 20대 여성에게 물려주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권위 같은 것에 별생각이 없어요. 리더십이 누구한테 가든 상관없고, 오히려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상상이 더 즐거웠어요."


그가 짚은 로컬 리더십의 흔한 패턴은 '계승되지 않는 이어달리기'다. 세대마다 리더가 "내가 다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하다 보니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다음 세대는 다시 0에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청풍이 가진 자산 위에 파도라는 사람의 역량과 리더십이 결합됐을 때 우리 활동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열려요. 저는 그게 재밌었어요."


이런 태도의 배경에는 유명상 개인의 성장 배경도 있다. "집에서 규제나 규율 같은 걸 별로 안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정해진 규약을 좀 싫어하는 편이에요." 장기적으로는 생태계적 관점에서 자신을 본다고 했다. "제 존재 자체가 사라지더라도, 그게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는지가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씨를 뿌려놓으면 나중에 숨은 나무들이 자라서 펼쳐졌을 때의 안정감, 그게 더 재밌다고 생각해요."


리더십을 넘긴 이후 그가 신경 쓴 것은 '말'이 아니라 '자리'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파도의 리더십에 반하는 의견은 거의 안 냈어요. 저도 그냥 같이 수행하는 입장으로 포지셔닝을 했죠. 그게 새로운 리더십이 잘 자리잡고 다른 동료들 역시 덜 혼란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지금은 팀 내에서 제 입김이 예전만큼 없다는 걸 확실히 느껴요. 그냥 '동네 아저씨' 느낌이에요(웃음)." 장난스레 던진 말이지만, 리더십 이양이 선언이 아니라 매 순간의 자리 내어주기로 완성된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인천에서의 활동, 그리고 "내가 다 바꾸겠다"던 시절

인천에서 나고 자란 유명상이 지역과 청년을 화두로 삼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에서 벌어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건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학교는 '동인천 가지 말고 중앙 쪽으로 가라'며 단속만 심해질 뿐, 실질적으로 바뀐 건 없었어요. 졸업하고 봤을 때도 내 동네가 똑같이 흘러가는 게 아쉬웠어요."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연결되는 경험이 그에게는 중요한 자산이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동네를 변화시켜보자"는 마음으로 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2021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를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축제 등을 기획했는데, 당시엔 큰 변화가 단번에 생기길 바랐다"고 돌아본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결의 회고가 이어졌다. "인천에 있을 때는 '내가 이 판을 깨겠다, 뒤집어엎겠다'는 마음이 강렬했어요. 그래서 기획도 작은 단위보다는 대형 축제나 하나의 '씬'을 보여주는 형태에 집착했죠."


그러나 이런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지역 상권 활성화와 관련한 큰 프로젝트를 이끌며 여러 청년을 끌어들였던 시절, 그는 "이걸 하면 정말 지역 청년들이 정말 행복할까, 이 삶을 누가 책임지지" 하는 갈등을 겪었다. 행정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자 곧바로 사업에서 배제됐다. 함께했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약 1년간 번아웃을 겪었다.


기획자가 아니라 구성원이 되기로 하다

번아웃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내려던 계획은, 강화풍물시장의 요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무렵 그는 '문화기획자'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이 항상 붕 떠 있는 게 별로였어요. 지역 일에서 한 발짝 빠져 '나는 기획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포지션이요. 행정이나 공공기관 사업을 계속 하면, 결국 그들의 요청에 따라 서비스를 수행하는 하청 역할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이 안에서 돈을 버는 생산의 지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서 피자집을 시작했어요."


2013년 강화풍물시장에 문을 연 화덕피자집 '화덕식당'은 그렇게 시작됐다.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와 속노란 고구마를 올린 화덕 피자는 입소문을 타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기획자로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구성원으로서 저도 함께 바뀌어가는 게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지역에 산다', '피자를 판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순간, 역할과 구조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어요."

인천에서는 문화 기획의 의미를 묻고 답하는 다소 낯선 관계에서, 강화에서는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재밌는 거 하는 애들"로 관계가 달라졌다.


포틀랜드, 일본의 커뮤니티에서 배운 '긴 시간'

시장에서의 일상이 쌓이면서, 유명상은 포틀랜드와 일본 답사를 통해 시야를 넓혔다. "사람들은 보통 힙한 상점들을 보러 가는데, 저는 그 안에 쌓인 커뮤니티성을 봤어요. 30년 정도 축적된 시간이 있으니까 새로운 도전이 발현되는 거더라고요."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긴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단기 목표에 치중하다 보니, 씬 하나하나는 재밌는데 그 안에 창발성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좋은’ 결과물을 벤치마킹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는 웃으며 "존버를 잘한다, 생존 감각이 뛰어난 편"이라고 답했다. 결과물을 ‘짠’하고 선보이는 게 목적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성장하며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가능했던 일일 테다. 그러한 마음이 지역의 속도를 따라가고, 함께할 사람들을 기다리며,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유명상은 이에 "저희는 남이 잘하고 못하고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믿었던 선배, 결국 “결과로 드러난다”

청풍의 여정에서 가장 뼈아픈 기억은 시장 안에서 벌어졌다. 2015년 말 상가 재계약을 앞두고 상인회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SNS로 문제를 공론화했던 사건은 여러 매체에도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 유명상은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면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당시 신뢰하고 의지했던 기획자 선배 A씨와의 갈등이었다.


"(시장 상인회와의 문제에서) 위기 신호가 감지돼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늘 후순위로 밀렸어요.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졌을 때도 '이건 세대 간의 갈등일 뿐인데 너희가 오해한 것'이라는 반응뿐이었죠. 추진 중이던 사업에 흠집이 날까 봐, 저희가 시장을 나가면 새 프로젝트 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더군요."


청풍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안팎으로 들어오던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멤버들과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이별 여행을 다녀온 뒤, 이들은 결국 직접 보도자료를 쓰고 SNS에 사실 관계를 알렸다. 외부에서는 지자체와 시장을 향한 항의가 빗발쳤고, 지역 내부에서는 주민들이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장사는 오히려 활기를 띠었고, 결국 재계약을 이끌어냈다.


"갈등은 넘겼지만 현장 생태계에는 상처가 크게 남았어요. 가장 뼈아팠던 건 문제를 더 확실하게 공론화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지나온 문제였음에도 말이죠." 


봉합의 대가는 오롯이 청풍의 몫이었다. 상황을 수습한 뒤의 무게는 오롯이 청풍이 감당해야 했다. 시장 내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발생한 마찰은 일단락되었으나, 청풍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명상은 이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현장을 망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 결과로 드러난다는 걸 배웠어요. 아무리 현장을 위한답시고 그럴듯한 명분을 이야기해도, 지나고 보면 자신의 이익과 사업의 외형만 챙긴 채 떠난 이들이 범인이었더라고요.." 이 경험은 훗날 싱가포르 예술단체 '드라마 박스'와 교류하며 다시금 또렷해졌다. "드라마 박스는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 진정성을 얘기하는 대신, 활동을 마치고 빠져나갈 때 이 커뮤니티에 부정적인 영향을 남기지 않는 법을 작업의 한 꼭지로 다루더라고요. 그게 인상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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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화유니버스|일상전환지 잠시섬 인스타그램


문화로 남기, 감각으로 남기

리더가 바뀌고 시스템도 바뀌었는데, 여전히 청풍 고유의 색깔이 유지되는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한 유명상의 답은 "일보다는 결국 문화"다.


"예전에는 계속 구전으로, 감각으로 조직 문화를 알아야 했어요. 그런데 파도는 그걸 다 문서화해요. 크루가 들어오면 해야 하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말들을 문서로 만들고, AI에게 학습시켜서 톤을 정리해요. 제가 리더였을 때는 감각과 눈치로 살아남아야 했다면, 지금은 친절한 가이드북이 있어요." 


일상의 감각이 지역 활동에서 갖는 힘에 대해서도 그는 오래 생각해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울은 규모가 크다 보니 일상이 바뀐다는 감각보다 아젠다 중심으로 '변화하자'를 외치는데, 그게 공허할 때가 있어요. 여기서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와서 워크숍 하나를 열었는데 그게 바로 어떤 사람에게 변화를 촉진시키는 걸 볼 수도 있죠." 청소년 캠프에 외부 강사 대신 내부 크루들을 멘토로 불렀던 경험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어떤 감도로 청소년을 만나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했다.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성공보다 좌절했던 경험을 다들 똑같이 PPT에 넣어왔어요. 지금 지역 청소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을지, 그걸 전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모두 동일한 감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참여한 청소년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죠. 한 학생이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멘토가 그렇게 말해줘서 어깨가 가벼워졌다'고 하더라고요."


"명랑하게 환불해드립니다"

각종 지역 체류형 프로그램이 범람하면서 현장 기획자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소비자’로서의 참여자 역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청풍이 운영하는 ‘잠시섬’ 역시 비슷한 문제를 마주하곤 한다. 이에, 청풍의 대응은 단호하고도 친절하다. "저희는 환불을 적극 권장해요. '뭐든 얼른 가세요'라고요. 비율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저희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는 없잖아요. 대신 톤앤매너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100% 환불을 안내해요." 서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관계의 결을 지키는 쪽을 택한 것이다.


수익 구조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답했다. "개별 유료 참가, 용역,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포지셔닝하고 있어요. 프로그램 자체는 지속 가능한데, 문제는 행안부 지역자산화 사업으로 건물을 매입하면서 받은 대출이에요. 변동금리이다 보니 처음보다 이자가 4배나 올랐어요." 웃음 섞인 고백이었지만, 지역에서 오래 버텨온 조직이 짊어진 현실적인 무게이기도 했다.


기획자가 아니라 디벨로퍼

로컬에서 활동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가늘고 길게"를 강조했다.

"높이 올라가는 삶이 아니라 정진하는 삶을 사는 게 지역에서는 더 맞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청풍이 커지고 매출이 느는 것보다,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대전 성심당 같은 사례를 로컬 창업의 정수로 꼽는 일부 정책 기조를 언급하면서는 "그런 슈퍼스타 사례는 몇 대에 걸친 역사와 우연성이 쌓인 상위 0.01%의 얘기인데, 다들 그걸 보편성처럼 얘기한다"고 짚었다. 


"일본 가미야마에서 만난 한 이주 도예가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도쿄에서는 치열하게 위로 올라가는 삶이었는데, 여기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요. 그 말이 제가 강화에서 느낀 감각과 같다는 점에서 놀라기도, 또 재밌기도 하더라고요. 지역에 산다는 건 이런 감각을 회복해가는 일이지 않을까요?"


최근 청풍의 활동은 '학습'에서 '교류'로 옮겨갔다.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한 번 같이 보고 '우리 이거 해보면 어때요' 하는 게 더 빠르더라고요." 일본 시부야 대학과 가미야마 지역 공동체, 대만 타이난 대학교 등과 꾸준히 왕래하고 있다. 올해 10월엔 타이난 쪽 아티스트가 잠시섬에 머물며 2주간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등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위캔드 요가처럼 그저 좋아서 시작한 활동이 참가자 30~40명 규모의 프로그램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새로 뭘 해야지가 아니라, 하고 있는 걸 어떻게 더 지속할 수 있을까로 넘어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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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저희도 농사를 짓는다는 감각으로 일해요. 씨를 뿌려두면 거기서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쑥 자라날 수도 있죠. 지난 10년은 그저 밭을 일구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음은 뭐냐'고 물어보면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일본 가미야마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깊이 공감했던 대목인데, 마을의 비전이란 처음에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며 만들어가는 건 맞지만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갈지는 결국 시간이 지나봐야 알게 되더라고요."


10년 차쯤 되니 제 손을 떠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 보여요. 내가 앞에서 판을 깔아서 된 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비슷한 고민과 시도가 꿈틀대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저절로 흐름이 만들어진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모든 걸 통제하고 설계하는 '기획자'라기보다 '디벨로퍼(Developer)'가 더 맞다고 생각해요. 무언가가 발현되는 건 기획자의 의도나 욕심대로 통제되는 게 아니라,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둔 뒤 긴 시간을 지나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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