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콘텐츠

인터뷰[엣지ON 활동의 정석] 당신의 활동, 어쩌면 비즈니스로 더 잘 풀 수 있습니다. - 알맹상점 고금숙 활동가

2025-10-01
조회수 883
당신의 활동, 어쩌면 비즈니스로 더 잘 풀 수 있습니다.
비영리 활동가가 시장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방법

_ 인터뷰 : 알맹상점 고금숙 활동가



대학 졸업 후 비영리단체 여성환경연대에서 13년간 활동한 고금숙 대표.
잠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해볼까 고민한 적은 있어도, 내 이름을 내걸고 무언가 책임을 지는 ‘사업’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커녕 앞에 나서는 것조차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사진1]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 ⓒ 고금숙


하지만 어느 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시민·기업·언론이 주목하는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의 대표로 맹활약 중이다. 앞에 나서는 것 조차 너무 싫었다는 활동가 고금숙은 어떻게 비즈니스(알맹상점)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고금숙 대표는 "생각해보면, 활동을 하며 형성한 베이스가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망원시장에서 2~3년간 시민들과 함께 다져온 커뮤니티 ‘알짜’를 알맹상점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알짜’는 망원시장에서 고금숙 대표와 함께 ‘장바구니 쓰기 운동’,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등을 함께한 시민들의 모임이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알짜들라고 부르는데, 고금숙 대표는 “이 알짜들이 바로 알맹상점의 첫 고객이자 지지층으로 자연스레 전환되고, 일부는 운영의 동력으로 합류한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운동과 캠페인을 함께 하며 쌓은 경험과 신뢰가 알맹상점의 탄탄한 출발선이 된 셈. 


고 대표는 “이는 나와 알맹상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활동가들이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로 만들진 비영리 커뮤니티는 사업의 초기 고객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변화는 어쩌면 비즈니스로 더 잘 풀어낼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망원시장 까페에서 그를 만나 “비영리 활동가가 시장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본 | 커뮤니티가 우리의 진짜 종잣돈


“사업을 하는 데 커뮤니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에 고금숙 대표는 “커뮤니티가 사실상 우리의 진짜 종잣돈이었다”며 “알짜라는 커뮤니티와 그 안의 ‘알짜들’이 없었다면, 사업을 시작할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2]비닐봉투 안쓰기 캠페인을 전개하는 고금숙 대표. ⓒ 고금숙


2~3년동안 장바구니와 텀블러 사용을 생활화하고, 상인들에게 “용기 가져오면 덜어 달라”는 부탁하며 망원시장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낸 알짜들. 이런 경험 속에서 '알짜들'은 “쓰레기를 줄이는 소비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고, 단순한 참여자를 넘어 운동의 주체로 성장했다.


활동이 이어질수록 캠페인에 동참하는 알짜들은 늘어났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뒤따랐다. 고금숙 대표는 “망원시장에서의 캠페인은 분명 의미 있었지만 행사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장바구니 나눠주기나 용기내기 캠페인은 순간은 활발했지만 일상으로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을 덜 쓰고 싶어도 시민들이 꾸준히 찾아갈 만한 리필스테이션 같은 공간이 없었고, 시장 안에서 상인을 설득해도 일부 가게만 응할 뿐이었다. 


“캠페인 방식의 운동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한 고금숙 대표와 알짜들. 자연스럽게 ‘사랑방이자 환경 운동 실천의 거점 공간’, 곧 자신들의 가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고금숙 대표는 우선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 사업성을 따져보기로 했다. 망원시장 상인회 카페('카페 M') 한쪽에 월 5~10만 원의 저렴한 비용을 내고 6개월간 무인 세제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한 것이다. 태국 방콕에서 방문한 한 제로웨이스트샵이 재래시장에서 팝업 형태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큰 자본 투자 없이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직접 매장에 상주하지 않고도 소비자 반응을 수집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파일럿 테스트 기간 동안 이 '알짜' 커뮤니티 회원들은 마치 자신의 가게처럼 꾸준히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며 초기 수요를 뒷받침해줬다. 심지어는 광명, 일산 등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서도 소비자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것을 보며, 특정 지역을 넘어선 명확한 시장 수요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사진3] 알맹상점은 다른 여타의 가게들과 다르게 1층이 아닌 2층에 위치해 있다. 고금숙 대표는 “알맹상점은 단순한 유동 인구가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진 고객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이었기에, 굳이 1층에 자리 잡을 필요가 없었다”며 “덕분에 임대료 부담을 줄이며 2층에 입점하는 전략적 선택이 가능했”고 말했다. ⓒ 고금숙


그렇게 고금숙 대표를 비롯한 공동창업자 3명은 각자 1000만원씩을 출자해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만큼 덜어 담을 수 있는 '쓰레기 없는 리필 가게(제로웨이스트 샵)'를 만들기로 했다. 껍데기(포장재)는 가고 알맹이만 사고 팔겠다는 마음을 담아 '알맹’ 상점이라 명명했다.


[사진4]알맹상점 내부전경. ⓒ 고금숙


세제·샴푸 같은 생활용품부터 곡물·차·견과류까지, 알맹상점에서는 손님이 가져온 용기에 필요한 만큼만 덜어 담아갔다. 일회용 포장재를 쓰지 않으니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원하는 만큼만 담으니 불필요한 소비도 줄어들었다. 동시에 가게는 시민들이 분리배출 방법을 배우거나 재활용품을 수거해 나누는 등 생활 속 실천을 공유하하다보니, 알짜들과 시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가게가 열리자 다른 알짜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한 번 해본 경험’ 덕분에 첫날부터 용기를 들고 와 세제를 덜었고, 계산대 앞에서는 다른 손님에게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충성 고객이자 자발적인 홍보자로 나섰다. 


[사진5]알맹상점 매니저 및 캠페이너 하은(왼쪽)


어디 그뿐인가. 고금숙 대표와 운영진이 급하게 자리를 비울 때에는 임시 사장(?)으로서 가게를 지킨 것도 다 알짜들이었다. 고금숙 대표가 “알맹상점은 알짜들 덕분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마케팅 | 소비자를 팬으로 만드는 방법


알맹상점의 작은 실험실은 창업 이후에도 계속됐다. 알맹상점 자체를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제로웨이스트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작은 실험실'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것이다. 


고금숙 대표는 작은 실험실을 가리켜 "소비자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와 가치관의 변화를 드러내 우리 활동의 강력한 동반자로 이어가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 소비자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대표적인 실험은 ‘완전한 무포장’을 향한 도전이다. 현행법상 비누 등 일부 위생용품은 포장지에 필수 표시 사항을 기재해야 하지만, 알맹상점은 제조업체가 포장 없이 생산한다면 제품을 그대로 입점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소비자가 민원을 제기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는 법규 위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이다. 고금숙 대표는 이에 대해 “누가 고발하면 그때 생각하고, 초범은 벌금이 크지 않을 테니 그 위험을 감수하자”는 생각으로, 포장재를 원천적으로 줄이려는 가게의 철학을 우선시했다고 밝혔다.


‘커뮤니티 회수센터’의 운영도 눈여겨 볼만한 도전이었다. 일반 재활용 시스템에서는 선별되기 어려운 특정 품목들을 수거해, 자원순환의 거점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기 쉬운 작은 플라스틱 병뚜껑, 커피 찌꺼기, 우유팩 등 약 10종의 품목을 수거한 뒤, 각기 다른 파트너에게 보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이다. 병뚜껑은 ‘플라스틱 방앗간’을 통해 치약짜개로, 커피 찌꺼기는 커피 화분이나 연필로, 우유팩은 화장지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수익으로 연결되기 힘든 시도와 도전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고금숙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쓰레기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는 강력한 효능감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이는 일반적인 고객-상점 관계를 넘어, 가게의 철학을 지지하고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사업적으로는 광고나 가격 경쟁이 아닌 이 팬덤의 꾸준한 재방문과 자발적인 입소문이 알맹상점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 됐고, 별도의 지원 사업 없이도 지속가능한 매출을 일으키는 기반이 됐다.


운동성 | 잊지 말자.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그' 이유를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서 온라인몰 전환이나 프랜차이즈화 등 빠른 성장을 보장하는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물론 시장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했다.


하지만 고금숙 대표는 단호했다. 알맹상점의 핵심은 "포장을 줄이고, 직접 용기에 담아 쓰는 경험"에 있기에, 택배 상자에 담겨 배달되는 온라인 판매는 원칙에 위배된다며 거부한 것. 


"운동성을 지키려다가 사업이 오히려 무너지면 어떡하냐"고 묻자 고 대표는 “우리의 경우, 오히려 장사와 운동이 충돌할 때 운동성을 지켜낸 것이 결국 장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사진6] 리필통에 필요한만큼 제품을 덜어쓰는 고금숙 대표. ⓒ 고금숙


알맹상점과 고금숙 대표는 오히려 적당히 타협하기보다는 망원시장에서 장바구니 운동을 전개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운동성 유지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고.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캠페인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알맹상점이 상업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 변화를 위한 거점이자 알짜들의 사랑방이 되고 싶었던 초심을 붙잡은 것이다.


덕분에 큰돈은 벌 기회는 자주 놓쳤지만(?), 조직은 비교적 건강히 오래도록 지탱할 수 있었다. 2020년을 전후해 불었던 열풍 속에 수많은 제로웨이스트 샵이 생겨난 뒤, 부동산 계약이 만료되는 2~3년차에 수익성 문제로 대부분 문을 닫았을 때에도 알맹상점은 직원들과 소비자들의 깊은 신뢰 속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알맹상점이 온라인몰을 통한 수익독점의 기회를 내려놓자, 오히려 각 지역에서 제2의 알맹상점을 꿈꾸는 후발주자들이 등장할 공간이 열린 것도 운동성에 기반한 성과다. 알맹상점은 이들을 경쟁자가 아닌 ‘든든한 동료’로 여기고 B2B 도매몰과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건강한 제로웨이스트샵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 고금숙 대표와 알맹상점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가까운 동네에서 리필 가게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확산 | ‘영리’한 ‘활동’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말.


고금숙 대표는 제2의 알맹상점을 꿈꾸는 활동가들에게 "비즈니스라고 해서 뭔가 전혀 다른 새로운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 대신 우리의 활동 베이스에서 힌트를 얻어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특히 “완벽한 계획을 준비하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했다. 알맹상점 자체가 "망하면 1년 뒤에 문을 닫자"는 각오로 시작했고, 거창한 사업계획서 대신 망원시장 카페 한쪽에서 "시험 삼아" 운영해 본 작은 세제 리필 스테이션으로 이른바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불편하는지 역시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찾고 다듬어갔다. 


다만 이러한 시행착오가 학습데이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뢰에 기반한 동료 집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현실적인 어려움에 함께 부딪히고 수습하며 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리더는 헌신적으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사업 초기 3년은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따지기보다, 자신의 삶을 갈아 넣겠다는 ‘사장 마인드’로 가게와 활동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며 “그 치열한 시간을 거쳐 시스템이 안정된 후에야 비로소 동료들과 책임과 권한을 나누며 지속가능한 활동을 함께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알짜 같은 커뮤니티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묻자 ‘금지’가 아닌 즐거운 ‘대안’을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고 대표는 "‘플라스틱 쓰지 마세요’라는 구호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이렇게 재밌고 멋진 방법도 있어요’라는 제안은 마음을 움직인다"면서 "실제로 알맹상점이 가장 기뻐했던 칭찬이 ‘힙한 소품샵’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활동을 무거운 운동이 아닌 즐거운 ‘놀이’이자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인터뷰어 : 정재훈 기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도와 흐름을 시민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