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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터뷰] '명랑하게 안녕'하는 기세, 지역에서 협동이 살아남는 법-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유여원 전무이사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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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칼리지 특별 인터뷰] 7월 8일 개강한 지역변화학교 '로칼리지' 첫 강연자로 나선 유여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 전무이사를 지난 6월 23일 미리 만났다. 살림은 2009년 '비혼과 여성주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3년 반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창립한 소비자협동조합이다. 같은 해 8월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가정의학과 살림의원을 열며 ‘여성주의 돌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348명의 조합원이 모여 시작했던 살림은 현재 조합원 5,300여 명, 직원 250여 명 규모의 전국 세 번째로 큰 의료협동조합으로 자랐다.

살림은 의원에 이어 치과, 한의원, 재택의료센터,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며 2022년에는 사회적경제 유공 포상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노인 방문건강관리 사업 ‘건강이웃’과 퇴원 후 회복과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케어BnB'(중간집)까지 사업을 넓혔다. 


살림 사무실에서 만난 유여원 전무이사는 "(의료사협 운영과 관련해) 노하우는 딱히 없다"면서도, 17년 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인터뷰 및 정리 : 박누리(농촌기록활동가)


여성 리더가 유독 많았던 동네, 은평

‘여성주의 의료기관’의 창립을 준비하는 동안, 살림이 가장 고심했던 과제 중 하나는 ‘어느 지역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였다. 수많은 지역 중 살림이 은평구에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당시 이 지역만의 독특한 리더십 구조가 있었다. 

유 이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은평의 지역사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났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정체화하시는 주민은 없었는데 여성 리더가 너무 많은 거예요." 


보통의 시민사회나 마을 공동체 단위의 활동을 살펴보면, 여성이 실무를 주도하더라도 대표성은 남성이 독식하는 왜곡된 구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중앙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은평구는 달랐다. 이 지점이 여성주의 의료기관을 꿈꾸던 살림의 지향과 맞물렸다. 지역에 뿌리 내린 ‘지역 협동조합’으로서 든든한 동료를 얻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1차 의료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역을 기반하지 않기가 어려웠어요. 큰 대형병원도 아니고, 전국에서 환자를 받을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실제로 전국에서 조합원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그는 웃었다.)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온 여성 선배들과는 초기 정서적 거리감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지속해서 만나며 관계의 밀도가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며 이들은 “이렇게 사는 삶이 있는 줄 알았으면 나는 결혼 안 했을 것”, “내 딸은 너희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격려를 건네기 시작했다. 유 이사는 이 과정을 “여성주의자들도 지역 주민이 되고, 지역 주민들도 여성주의자가 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지역적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하나 꺼냈다. 2011년, 행정이 제안한 프로젝트 공모 심사 과정에서 한 심사위원(당시 은평구 약사회장)이 "여자 치마랑 프레젠테이션은 짧을수록 좋은 거 아시죠"라는 폭언을 던졌다. 유 이사가 현장에서 즉각 항의하며 10분 예정이던 심사가 40분까지 이어졌다. 그날 저녁 지역 연대체 워크숍에서 이 얘기를 전하자 동네 선배들이 들고 일어나 결국 구청장, 보건소장, 약사회장의 사과와 경위서 제출까지 받아냈다. 


"여성주의는 기본적으로 나로부터 시작한 액션이잖아요. 그 액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살림, 돌봄과 건강과 관계를 살리는 노동의 이름

조직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 역시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조합 명칭을 정하는 최종 투표에서 ‘은평 의료협동조합’과 ‘살림 의료협동조합’이 경합을 벌였고, 단 몇 표 차이로 ‘살림’이 결정됐다.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뜻도 있지만, 여성들이 주로 해왔던 집안 살림, 그 돌봄과 건강과 관계를 포함하는 노동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당시의 선택은 현재 고양시 등 타 지역으로 이주하는 조합원이 늘어난 시점과 맞물려 조직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효과도 낳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평생 여성운동에 헌신한 박영숙 선생과의 인연도 짧게 소개했다. 장학재단 살림이 사무실의 책상 한 칸을 내주었던 그와의 만남은 "20대와 70대가 세대를 뛰어넘어 만난" 경험이었다. 유 이사가 화분을 관리하지 못해 모두 죽였을 때, 박 선생은 "식물도 못 살리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살립니까"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이 일화는 돌봄과 생명을 다루는 ‘살림’, 여성주의 활동의 무게감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명랑하게 안녕’ 하는 ‘기세’

살림에서 조합원들의 자원활동은 단순한 봉사가 아닌 '노동의 협동'으로 불린다. 100시간 이상 자원활동을 한 이들을 기록하는 '100시간 클럽' 같은 제도가 대표적이다. 유 이사는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비결로 ‘기세’를 꼽았다. 


“배우 윤여정 씨가 그런 말을 하셨던데요, ‘패션은 기세’라고요. 그 말처럼,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서로 협동하고 서로 돌볼 수 있는 존재라고, 이렇게 하면 재밌잖아, 이렇게 할 수 있잖아 하고 밀어붙이는 기세가 살림엔 좀 있어요(웃음).”


다만 모든 조합원이 상시로 헌신할 수는 없다. 살림에 “명랑하게 안녕”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이유다. 에너지가 있고, 하고 싶을 때 실컷 활동하다가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되면 언제든 명랑하게 인사를 건네고 물러설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개 자원이 부족한 가치 지향 조직이나 운동 단체에서는 활동가의 일시적 공백이 조직의 위기나 개인의 부채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면 살림은 이를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인정한다. 


"네가 명랑하게 안녕해도, 열심히 또는 실컷 활동하고 싶은 시기가 온 다른 사람이 해주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녕해도 돼요. 그런 의미를 담은 말이죠." 


자유로운 이탈과 자발적인 참여가 공존하려면 ‘구조’가 필요하다. 살림은 이를 '돌봄 매트릭스'라 부른다. 참여자의 의지와 가용 시간에 맞춰 활동 방식을 촘촘하게 세분화해 두는 시스템이다. 그래야 일주일에 1시간만 낼 수 있는 사람, 돌봄 활동에 아주 가볍게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도 비교적 쉽게 경계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이사는 “작은 마음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조직의 기세로 전환하는 것이 이 구조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치과 설립이 아니라 더 많은 협동을 만드는 것이 목표"

구조화된 참여 시스템은 2016년 살림치과를 설립할 때도 그대로 작동했다. 조합원들은 여러 차례 열린 회의를 통해 공간 임대부터, 장비, 진료비, 홍보물까지 직접 결정했다. 당시 첫 회의를 열며 유 이사가 공유한 문장은 살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됐다. 


“이 모든 과정의 목표는 치과를 만드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협동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유 이사는 본인이 한 말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회의에 참석한 조합원들에게는 지금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더 많은 협동을 경험하고 더 협동하는 사람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일 수밖에 없거든요."


유 이사는 이 철학이 공상적인 이상론이 아닌, 철저하게 실리적인 경영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사회적경제 붐이 일며 곳곳에 만들어졌던 각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이 결국 내외부 갈등이나 운영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직원이 250명인데, 돈만 벌려고 하면 250명이 버는 거지만 협동을 하려고 하면 조합원 5,300명이 같이 벌 수 있거든요. 훨씬 이득인 거죠." 


다만 급여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5천 여명의 조직을 이끄는 데는 일반 기업 경영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치과’라는 결과물보다 ‘협동’ 그 자체를 목적지이자 핵심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선례가 없던 시절, 그의 이런 확고함은 어디서 왔을까. 원동력을 묻자 그는 자신의 기질을 먼저 짚었다. 혼자서는 결과물을 완결 짓지 못하는 성향이었기에 역설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 최적화 됐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혼자서 완결적으로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대자보도, PPT도 못 만들거든요. 지금도 서류를 손으로 쓸 때도 있어요." 


그는 또 "사람들은 보통 좋아할 이유가 있어야 친해지는데, 나는 싫어할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친하고 본다"는 말을 들었다며 웃었다.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태도 역시 협동의 틀을 넓히는 데 주요한 힘이 됐을 테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을 주창하던 여성주의 운동 안에서, 그는 “안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왔다는 걸 지역에 들어와서야 깨달았다고 했다. 


"입으로는 다양성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사람을 안 만나본 거예요. 오히려 다양성을 경험한 건 협동조합 운동하면서, 지역에 와서였어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거절을 겪었다. 유 이사는 일본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강조하는 "초등학교 5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워딩"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소통 방식을 철저히 바꾸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5년에 한 번은 멈추자, 번아웃과 회복

20년 넘게 조직을 이끌어 온 원동력을 묻자, 그는 자신을 "람보르기니 같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지치지 않고 무한대로 달릴 수 있다는 뜻인 걸까. 정 반대의 의미였다.


"연비가 좋지 않아서 4~5년 달리면 뻥이 나요(웃음). 5년 일하면 1년은 쉬어야 하더라고요." 


초기에는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세 번의 번아웃 사이클을 거치며 자신의 패턴을 파악했다. 첫 번아웃 시기에는 홀로 중미로 떠나 6개월을 보냈고, 돌아와서는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일단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누린 후 그 다음에 뭘 배우면 회복이 되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지금은 번아웃이 와도 불안하지 않아요. 근데 그걸 알기까지 10년이 걸렸죠." 


타인의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활동에 몰두하면서도, 정작 활동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고갈되는 사례는 시민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유 이사가 겪은 10년의 시행착오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조직과 동료에게 투명하게 공유해 공백을 제도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멈춤을 실패가 아닌 다음 단계를 위한 순환으로 이해하는 태도다. 


유 이사는 자신의 주기성을 인지한 지금, 조합원과 동료들에게 미리 일정을 공유하며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한다.
 

"시작은 100분의 1, 유지가 100배 힘들다"

전국 31개 의료협동조합 중 14번째로 만들어진 살림은 현재 안성, 안산에 이어 세 번째 규모로 성장했다. 유 이사는 후발 주자였던 살림이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로 '준비 기간의 축적'을 꼽았다. 그는 협동조합을 준비하던 3년 반 동안 다른 의료협동조합(노원 함께걸음의료협동조합)과 연합회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며 실무를 익혔다. 


물론 이 시기는 경제적인 공백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최저시급 사회적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를 위해, 지인들이 매달 50만원, 25만원씩 생활비를 보태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당장 손에 쥔 돈은 없었지만, 그가 지닌 관계 자본과 문화 자본이 든든한 자산이 되었던 셈이다.


이러한 신뢰 자산의 뿌리는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 이사는 대학 시절부터 여성주의 활동의 일환으로 친구들과 연대해 소규모 대출이나 상호부조 같은 대안적 경제 모델을 직접 기획하고 실험한 경험이 있다. 제도권 금융이 닿지 않는 청년들의 취약한 기반을 서로의 신뢰로 메운 당시의 경험은, 훗날 그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주변의 자발적 연대를 끌어내고 나아가 출자금만으로 의료사협을 개원하는 강력한 ‘관계 자본’의 밑거름이 되었다.


초기 창업 구성원의 결속력도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살림은 의사 두 명(추혜인, 박인필)과 유 이사 등 세 사람이 함께 시작했는데, 이는 일본 의료생협 연합회가 위기에 처한 조합에 의사와 전무이사를 세트로 파견하는 방식과 유사한 구조였다. 


"이 셋의 관계가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았어요. 보통 친구끼리 동업하면 많이 깨지잖아요."


그는 초기 단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인력 구성이 서로 안 깨질 수 있는 종류의 사람들인지"를 먼저 살피라고 조언했다.


특히 그가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은 '설립(오픈)'과 '운영(유지)'의 난이도 차이였다. 


"오픈은 그 이후 유지에 비하면 난이도가 100분의 1이에요. 코어가 없는 상태에서는 절대 유지가 안 됩니다. 오픈이 능사가 아니에요. 오픈에 모든 체력을 다 쓰게 되면, 유지할 만큼의 역량을 확보할 수 없잖아요. 산에 올라갈 때 체력을 다 써버리면 내려올 때 큰일 나는 것처럼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태도에 대해서도 담담한 제언을 덧붙였다. 


"사업을 중단할 때 아쉽고 슬프겠지만, '실패했다'거나 '괜히 했다'는 생각만 안 하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살림이 없었던 사회와, 살림이 있었던 사회는 다르지 않겠어요? 그 안에서 뭔가 기여하고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생긴 거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또 ‘다음’을 함께 만들어 갈 기회가 다시 열릴 수도 있고요."


 동료 시민의 몫

지역 의료협동조합의 오랜 난제인 '의사 구인난'에 대해, 유 이사는 의사 개인의 선의에 기대기보다 시장의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의 독특한 의료 시장 구조, 즉 무한 경쟁 체제와 높은 기대 수익이 보장되는 환경 속에서 의미와 가치만을 앞세워 의사들에게 협동조합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포기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걸 극복할 만한 리워드(보상)를 조직이 만들지 못하면 의사는 올 수 없는 구조예요."


살림이 찾은 해결책은 ‘동료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연대였다. 살림이 의원과 치과를 열 때 은행 빚 없이 전액 조합원 출자금으로만 개원한 것도 그 실천의 하나다. 이는 한국 의료협동조합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의사가 은행 빚을 갚아야 되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좋은 진료받고 싶은 욕심이 그 정도까지도 안 된다면, 그냥 명의가 하늘에서 떨어지길 바라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살림의 출자금에는 배당도 이자도 없다. 유 이사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짊어진 이 무위험·무이자의 연대감 자체가 의사에게 강력한 리워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자는 건강입니다, 이자는 좋은 관계입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요. 이 정도까지 해 줄 시민의 연대감이 없으면 협동조합은 어려워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기 때문에, 그게 의사에게 리워드가 되는 거예요."


차트를 공개할 수 있는 마음, 다학제 팀이 일하는 법

살림에서 주치의로 일하려면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자신이 진료한 차트를 다른 직종의 동료들과 공유하는 시스템에 동의하는 것이다. 


"1인 개원한 의사 선생님들은 자기 차트를 누가 볼 일이 없어요. 살림은 정신과 상담 내용을 제외한 처방과 기록이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심지어 환자와 보호자까지 직종에 맞는 수준으로 다 공유됩니다." 


실제로 치매 약의 부작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요양보호사의 보고를 바탕으로 의사가 처방을 바꾸는 사례도 있다. 차트뿐 아니라, 환자와 관련한 다양한 관계자가 정보를 공유하기에 가장 최선의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게 권한의 침범이 아니라 좋은 피드백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이러한 협업 구조가 감시가 아닌 상호 학습으로 정착하기까지 조직 차원의 지속적인 자원 투입도 따랐다. 현재 살림의원 소속 의사 13명은 매주 스터디를 진행하며, 한의사·치과의사까지 포함한 전체 의료진 스터디도 별도로 열린다. 


"차트를 그저 ‘공개만’ 하면 감시로 느껴져요. 그걸 가지고 계속 스터디를 하면서 궁금한 걸 나누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체험하게 하는 데, 공력을 투입하는 거죠."


2030도 활발한 살림을 위해

조직의 외형적 성장과 혁신적인 협업 체계 구축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대교체는 여전히 까다로운 과제다. 살림 역시 20대와 30대 조합원 확보에는 고전하고 있다. 유 이사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조직 내 소외감을 원인으로 짚는다. 


"’다양성’을 가볍게, 즐겁게 느낄 수 있는 건 나랑 비슷한 사람이 주축이고 다른 사람이 조금씩 섞여 있을 때이지, 내가 소수자일 땐 그렇게 좋게 느낄 수 없는 게 사실이잖아요." 


2030 세대가 살림에 진입했을 때 환대는 받지만, 주축인 5060 세대 사이에서 "다 이모나 엄마 느낌"을 받다 보니 또래 집단 특유의 활기나 편안함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3년째 가동 중인 '2030 TF'는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활동이다. 청년 세대의 언어로 소통하는 오픈카카오톡방(‘동네 페친’)을 운영하고, 풋살이나 비건 요리 모임을 지원한다. 이사회 내에 2030 몫을 별도로 배정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조합원 5천 명을 넘기며 실시한 전체 조사도 타깃을 정교화하는 계기가 됐다. 건강과 돌봄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는 시점이 35세 전후라는 사실을 데이터로 확인한 것이다. 살림은 이를 바탕으로 현재 33세부터 43세까지를 명확한 타깃층으로 설정해 세대교체의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실핏줄이 되는 노인 일자리, '건강이웃'

노인 방문건강관리 사업 '건강이웃'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노쇠 전 단계 어르신 댁을 방문해 관절 운동과 인지 프로그램을 돕는 일자리다. 일반 노인 일자리보다 챙겨야 할 일이 많은 편이라, 100명으로 시작한 첫 사업에서 한두 달 만에 누적 이탈률이 300%에 달할 정도로 중도 탈락자가 많았다. 


그러나 현장에 남은 이들은 방문 가구에서 파킨슨, 중증 치매, 은둔형 외톨이, 가정폭력 피해자 등 사각지대의 이웃들을 잇달아 발견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800가구 전체를 사례관리한다는 뜻이라 빡세지만, 지역에 진짜 필요한, 실핏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업은 기존에 이미 활동이 있던 지역 공간(서로돌봄카페, 운동센터 등)과 연계한 '은평 서로돌봄 공간 네트워크'로 확장돼, 2년 만에 14개 거점으로 늘었다. 유 이사는 거점 다각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쇠해질수록 행동 반경이 좁아지거든요. 진료가 필요하면 의원으로 오지만, 관계 맺는 곳은 가까이 있는 게 좋아요. 그리고 그게 꼭 그게 살림일 필요도 없고요." 


사업 추진 시 외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 기반을 먼저 다진다는 원칙도 덧붙였다. 


"처음부터 돈을 받으면 현장 상황에 맞춰 방향을 트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런 점에서 일단 회비 모아서 시작하는 게 나아요. 현재 우리 지역에 필요한 걸 우선적으로 진행할 유연성이 확보되니까요."


제도가 없으면 우리가 먼저 만든다 ‘케어BnB’

퇴원 후 회복을 돕는 중간집인 '케어BnB'는 일본의 경우 장기요양보험 수가로 제도화돼 있지만 국내에는 미비한 모델이었다. 살림은 2021년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시도했고, 5년이 지난 2026년 보건복지부가 관련 시범사업을 발표하며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 


"제도가 있는 건 최대한 활용하고, 아직 없지만 제도화하고 싶은 건 먼저 혁신적으로 시도해서 결과를 들이밀며 제도화시키고, 영원히 제도가 안 될 것 같은 건 우리 힘으로 간다." 


이것이 살림의 오랜 사업 전략이다.


공간 마련을 위해 살림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직접 찾아가 "임대료는 전액 내겠으니 실험할 건물 한 동을 달라"고 제안했다. 초기 예산은 서울시 참여예산 공모를 통해 시민 5만여 명의 지지를 얻어 조달했다. 행정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의료적 리스크는 살림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조건을 걸었다. 


"현장 행정이 리스크를 지게 하면 백 년, 천 년 걸려요." 


초기에는 재활을 통한 자택 복귀 가능자에 초점을 맞췄으나, 운영 과정에서 고관절 수술 후 3일 만에 퇴원해 24시간 절대안정이 필요한 1인 가구 등의 실질적 수요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사업을 ‘재활형’과 ‘절대안정형’의 투 트랙으로 발전시켰다. 이 현장 경험과 매뉴얼은 고스란히 보건복지부 시범사업 설계에 반영됐다.


그러나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의 초기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주민들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동네에 유입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했다. 


"치매나 아픈 노인들이 들어오면 교통사고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셨어요. 청년주택 반대하는 것과 비슷하죠." 


살림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물리적 격리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옥상 텃밭 분양, 주 1회 무료 운동 프로그램 등을 개설해 입주 노인과 동네 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자리를 계속 만들었다. 공간의 성격을 ‘격리 시설’이 아닌 ‘열린 집’으로 정의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여기는 시설이 아니라 집이잖아요. 집답게 돌아가려면 이웃과 관계가 있어야죠."


위기 관리의 원칙, 최전선의 실무자를 보호하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유 이사는 살림치과 개원 초기에 발생한 HIV 감염인 진료 거부 사태를 언급했다. 당시 외부적으로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조합원 탈퇴와 1인 시위를 예고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진료를 거부한 직원이 배우자로부터 "이혼하자"는 압박을 받는 등 안팎의 갈등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유 이사는 이 사안이 조직의 부족함 때문이었을 인정하면서도, 리더로서 현장 실무자를 보호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거부한 직원들도 쉬운 게 아니에요. 좋은 마음이 아니라 너무 힘든 거예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욕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부족한 점의 가장 전면에 있는 사람들이 욕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가 지켜온 원칙은 신뢰와 공유였다. 


"조합원들이 ‘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유하면, 조합원들이 정말 그렇게 하더라고요." 


물론 경영 부실이나 책임론이 제기되며 "상무이사가 책임져야 될 거 아니냐"는 날 선 질책도 나온다. 그럴 때 유 이사는 "제 책임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며 논의를 이어간다. 감정적인 분노를 안전하게 터뜨릴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책임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광야에 혼자 서서 몇천 명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던 한 직원의 말을 전하며, 조합원들이 직원의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합원은 소비자인 동시에 직원의 사장이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인력을 어떻게 계속 다니게 하고, 즐겁게 일하게 할지 계속 고민해야 돼요.”


이 때문에 살림은 조합원에게도 명확한 가치의 선을 긋는다.


“저희는 친절을 팔지 않습니다. 안심을 팝니다.”


과잉도 과소도 아닌 적정한 의료의 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살림이 증명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다.


협동이 열어젖힌 지역 돌봄의 미래

유 이사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현장에서 증명해 온 것은 결국 ‘협동의 실리와 지속가능성’이다. 그 여정은 자원이 부족한 지역사회에서 여성주의와 돌봄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혼자서는 완결할 수 없다는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구성원 각자의 마음과 시간을 촘촘히 엮어낸 ‘돌봄 매트릭스’와 ‘금융적 연대’는 오늘날 시민사회가 마주한 고질적인 활동가 고갈과 재정 난제를 돌파하는 힌트를 제공한다. 실패와 멈춤마저 다음 단계를 위한 순환으로 인정하고, 제도가 없는 영역에서는 먼저 혁신을 시도해 정책을 견인해 내는 일. 지역 운동과 사회연대경제가 나아가야 할,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던 미래다.


살림의 의료사협 운동과 지역 돌봄 혁신에 관한 더 구체적인 기록은 2025년 10월 출간된 저서 <나이 들고 싶은 동네(반비 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본 인터뷰의 문제의식과 현장 노하우는 지역변화학교 ‘로칼리지’ 1강 유여원 전무이사 강연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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