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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엣지X비욘드로컬] 로컬의 자본은 어디로 흐르는가

2026-07-08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전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내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의 '잡지 속의 잡지' 계간 [비욘드로컬]에 실린 글입니다.


전라북도 농촌의 인구감소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 2만 5000명 남짓한 한 지역의 2024년 예산은 8259억 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1인당 3300만 원에 이른다. 전북의 대표 도시인 전주시의 1인당 예산이 약 400만 원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큰 규모다. 물론 이 재원이 주민에게 현금처럼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만큼의 재정이 지역에 투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돈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난다. 이렇게 큰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주민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는 지역당 100억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2023년 한 해에만 지역의 청년 유입을 위해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 그럼에도 그 결과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거나 부정적이다. 결국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인다.

“돈은 충분히 투입되고 있는데, 왜 지역은 나아지지 않는가?”


완주의 지역경제순환을 위한 시도


2012년 전라북도 완주군은 인구 약 8만 5000명, 고령화율 20%, 면지역 인구감소율 -0.8%인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그러나 예산은 5005억 원, 재정자립도는 25.7%로 농촌 지자체 중에서는 비교적 건전했다. KCC, 현대자동차, 하이트맥주 등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 완주군에 자리 잡고 있어 지방세 수입이 많았다. 당시 군수는 ‘완주의 미래는 농촌에 있다’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이 자주재원을 바탕으로 로컬푸드, 커뮤니티비즈니스, 마을회사, 두레농장과 같은 혁신적 실험을 시작했다. 이는 다른 군수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키우는 전통적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완주군을 지원하던 전문가들이 여러 사업을 하나의 틀로 제시한 개념이 바로 ‘지역순환경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컬푸드다.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 우선 공급·판매하자는 것으로, 당시 농부들은 도시를 비롯한 외부 지역에 필요한 농산물을 주로 생산했고 지역주민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은 거꾸로 외부에서 사는 구조였다. 농협도 마찬가지였다. 생산물을 수취·유통하는 경제사업과 생필품·농자재를 판매하는 구매사업은 사업목적과 수익구조가 달라 서로 연계되지 않았다. 


완주군은 이 단절을 지역 내부에서 연결하려고 했다. 커뮤니티비즈니스, 마을회사, 두레농장 등은 모두 지역순환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 최초의 중간지원조직이 활동하는 공간에 ‘지역경제순환센터’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지역순환경제의 관점에 하나의 층위를 더했다. 마을만들기는 마을의 자치적·공동체적 필요를 비시장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회운동이었지만, 2000년대 시작한 농촌의 마을만들기는 농촌관광 중심의 비즈니스로 변질되고 있었다. 마을소득의 증대로 포장했지만 주민들을 ‘더 벌고 더 쓰며 더 일하는 구조’로 밀어 넣었고, 실질적인 소득과 상관없이 씀씀이가 달라져 주민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졌다. 


농업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순수익보다 경영비가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났고, 규모를 늘려 높은 수준의 매출액을 달성해야 어느 정도 순수익이 보장되었다. 점점 대농과 중소농의 소득격차는 심해졌고, 중소농은 많이 벌어도 더 많이 쓰고 더 일해야 하는 악순환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만들기 사업 역시 외부 관광수요에 의존하면서 농촌 지역의 자본화를 부추기고 있었다.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외부에 의존하던 수요를 지역 내부에서 충족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들어 농민의 부업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가계지출을 줄이고자 했다. 즉, 지역에서 버는 것과 쓰는 것을 연결해, 적게 벌어도 덜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새로운 경제활동을 도입한 것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완주군은 40여 개의 커뮤니티비즈니스 사업단을 발굴·육성·창업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와 맞물리면서 이들 커뮤니티비즈니스 사업단은 다양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되었다. 큰 틀에서 보면 완주군은 대기업 세금으로 마련한 재원을 지역 내부의 작은 공동체 조직에 투입했고, 이 조직들은 외부 의존적 수요를 지역 안에서 해결하며 자본 유출을 줄이는 다층적 순환구조를 형성했다.


완주의 커뮤니티비즈니스와 그 사례


커뮤니티비즈니스는 단순히 ‘지역의 문제를 지역 내에서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해 비즈니스 형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활동 전체를 포괄한다. 


주민이 주체라는 말은 지역주민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수익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구조를 뜻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본주의적 기업 구조에서 주인이 되기 어려웠던 어르신, 여성, 청년, 장애인 등 농촌의 취약계층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초기 커뮤니티비즈니스는 비교적 접근이 쉬운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다문화 여성과 이주여성들이 함께 하는 제빵사업, 청년과 경력 단절 여성이 힘을 모은 식품 가공 등이다. 이어 청년들은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사업을 만들거나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사업을 창업하고, 어르신들은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농장이나 사물놀이 공연단을 꾸렸다. 이처럼 초기에는 지역 내외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통적인 비즈니스가 주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완주의 커뮤니티비즈니스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중간지원조직이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로컬푸드직매장, 농민거점형 농산물종합가공센터, 공정여행사업단 등과 같은 전략사업들이 자리를 잡자 지역주민과의 교류가 증대되었고, 지역주민, 중간지원조직, 행정 간에 신뢰가 쌓였다. 이 무렵부터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일자리 창출 중심에서 개인의 필요를 조직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숟가락 공동육아협동조합’이다. 2014년 완주 고산면에 귀농·귀촌한 가정들이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구조였기 때문에 비용은 낮아지고 돌봄의 질은 높아졌다. 멀리 이동해야만 가능한 서비스를 마을 안에서 해결하려는 필요가 조직된 것이다. 


두 번째는 요일식당 ‘모여라 땡땡땡’이다. 귀농·귀촌한 여성들이 일주일에 하루, 요리를 만들어 부업을 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출발했다. 요일마다 주방팀이 바뀌며 다양한 음식을 제공했다. 이 역시 지역 안의 ‘작은 필요’를 조직해 낸 시도였다. 


세 번째는 ‘고산다움 협동조합’이다. 고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러 사회적 경제조직이 힘을 모아 자금을 마련하고, 지역자산화사업을 통해 대출까지 연계해 게스트하우스, 교육장, 공유부엌, 사무공간을 공동으로 확보했다. 활동공간을 안정적으로 마련하자는 필요가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으로 묶인 것이다.


이랑협동조합


키울협동조합

지역의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활과 치료를 제공하는 이랑협동조합과, 이 조직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학부모들이 장애아동의 공동육아를 위해 만든 조직 키울 협동조합은 서로 협업하며 서비스 제공자, 장애아동, 그 가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고 있다. (사진 : 완주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


‘숟가락 공동육아협동조합’과 요일식당 ‘모여라 땡땡땡’은 시간이 지나며 개인적 필요가 사라져 문을 닫았지만, 그 빈자리를 새로운 실험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이랑협동조합’과 ‘키울협동조합’의 협업이다. 이랑협동조합은 지역의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활과 치료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이다. 이 조직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학부모들이 장애아동의 공동육아를 위해 만든 조직이 바로 키울협동조합이다. 두 조직은 서로 협업하며 서비스 제공자, 장애아동, 그 가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고 있다.


이처럼 완주군의 커뮤니티비즈니스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된 전통적 비즈니스에서 출발했지만, 지역주민의 필요를 조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력하는 생활기반 공동체로 진화했다. 이는 완주의 지역순환경제 실험이 단순한 창업을 넘어서, 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문화적 구조 변화를 촉발했음을 보여준다.


완주군의 새로운 과제


지역순환경제를 추진했던 군수 이후 두 명의 군수가 새롭게 선출되었다. 첫 번째 군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지만, 중간지원조직에서 ‘커뮤니티비즈니스’라는 이름을 지우고 기존 활동가들을 전면 교체했다. 두 번째 군수는 군정의 중심을 경제성장과 산업단지 조성에 두었고, 기업 유치가 핵심 전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행정조직과 중간지원조직은 축소되었고, 몇몇 사회적경제 조직은 활동공간에서조차 밀려났다. 이는 완주가 여러 해 동안 구축해 온 순환경제 기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 지역발전 방식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같은 전략을 선택한 상황에서, 기업 유치 경쟁은 결국 지역 간 ‘치킨게임’으로 흐를 수 있다. 인구가 줄고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누군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모두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제는 같은 전략을 쓰더라도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할 또 다른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일본 시가현의 히가시오미시는 일찍부터 ‘지역가계부’를 작성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돈이 지역에 어떻게 배분되고, 그 돈이 다시 얼마나 지역에 남고, 얼마나 외부로 빠져나가는지 정밀하게 기록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식비의 60% 이상, 에너지 비용의 80% 이상이 지역 밖으로 유출되고, 교육·돌봄·의료비 또한 상당 부분 외부 기업으로 향하고 있었다. 히가시오미시는 이를 바탕으로 외부로 새는 비용을 줄이는 것을 지역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역의 돈이 지역에 머무는 순간 경제가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히가시오미시의 사례를 완주군에 대입하면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역시 분명해진다. 먹거리 지출을 지역 농가와 식품 체계로 연결하는 푸드플랜, 전기 요금처럼 대규모로 유출되는 비용을 지역 내부의 생산으로 대체하는 에너지 자립, 교육비와 청소년의 미래를 지역이 함께 책임지는 마을교육공동체, 돌봄 비용을 지역주민의 노동과 소득으로 전환하는 주민주도 돌봄 체계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분야지만, 지역의 일상적 지출을 지역 내부의 자원과 역량을 연결해 순환구조를 강화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완주군의 지난 경험은 지역순환경제가 단일한 사업이나 특정 분야의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구조와 문화를 함께 바꾸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설계하고 연결하며 조율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간지원조직은 창업조직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성장시키는 기능을 넘어,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 활동을 지원하며 사회혁신을 촉진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는 또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민자치를 강화하는 핵심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로컬을 위해


최근 몇 년 사이 ‘로컬 ○○’이라는 말을 전국 곳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지역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짙다. 멋진 디자인과 브랜드, 화려한 공간은 눈에 잘 보이는 성과를 만들 수 있지만 지역이 안고 있는 인구감소, 일자리 부족, 돌봄과 교육의 붕괴, 에너지와 먹거리의 외부 의존과 같은 근본 문제는 외면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로컬사업들이 지역의 돈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이다. 힙한 공간과 감성적인 카페, 지역성과 무관한 채색된 콘텐츠는 외부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수익은 대부분 외부 자본과 인터넷 플랫폼으로 빠져나간다. 지역 안에 머무르는 몫은 적고, 주민 다수는 여전히 변화의 주변부에 머문다. ‘로컬’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버리는 소비-배설 구조를 확산한다. 


완주군의 경험은 로컬 정책이 멋진 공간을 만들거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일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로컬’이라는 단어의 유행에 의존해 지역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돈과 관계를 순환시키고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서 지역주민의 일상적 지출이 소득과 일자리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을 지속시키는 힘은 브랜드가 아니라, 주민의 삶과 필요에서 출발하는 공동체 활동이다. 그 활동을 위해 쓰이는 예산과 지출이 지역 안에서 순환할 때, 로컬은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로컬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전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내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의 '잡지 속의 잡지' 계간 [비욘드로컬]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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