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은 유가족다워야 한다”는 프레임을 극복하는 방법
피해자를 능동적 주체이자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세우는 유해정式 기록에 대해
_ 인터뷰 : 인권기록센터 사이 유해정 활동가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에게 우리 사회는 종종 ‘유가족답게’ 행동하라는 요구를 던져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밥을 먹거나 웃는 것 같은 일상적인 행동조차 “어떻게 저럴 수 있냐”는 비난에 시달렸고, 백남기 농민의 딸은 아버지가 위중한 상황에서 가족 행사 차 떠난 여행 때문에 ‘불효자’로 낙인찍혔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들은 “노가다”, “돈 욕심”이라는 조롱 섞인 댓글에 시달리며, 대통령에게 관심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생떼 부린다”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의도적인 프레임이라고 지적한다. 유가족의 사생활이나 보상금 문제 등 자극적인 내용을 부각해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가둬, 결국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같은 '정치적 애도'로의 확장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진1] 2024.6.9 광주학동참사 3주기. 광주학동참사 피해자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 중인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정치적 애도는 슬픔을 공적 발화로 전환하는 행위에요. '왜 이 재난이 발생했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지?'를 물어 개인의 비극을 국가와 사회, 제도의 책임 문제로 확장하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기억, 진실, 정의, 안전이라는 구체적인 권리로 제도화하는 과정이죠.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고 참사를 야기한 사회적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이런 애도의 과정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어요."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묻자, “피해자들은 그런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참사의 전 과정에서 명확한 권리를 가지며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는 능동적인 주체”라며 관점의 전환을 주문했다.
기자의 질문에조차 무심코 묻어나는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시각’.
“그럼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의 권리를 드러내는 ‘기록’을 통해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충무로 소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무실을 찾아, 기록을 통해 피해자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세워 온 유해정 센터장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들어봤다.
“피해자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다”
우선 유해정 센터장이 바로 세우고 싶은 '피해자의 권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해정 센터장과 4·16재단은 <재난 및 안전사고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통해 ▲진실, ▲정의, ▲안전, ▲회복, ▲기억 등 5가지를 피해자의 핵심 권리로 제시했다.
- 진실: 재난의 상황과 이유, 배경과 원인, 책임 소재를 포함하여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권리
- 정의: 참사를 초래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책임자를 정당하게 처벌하며, 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요구할 권리
- 안전: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대한 국가의 약속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할 권리
- 회복: 참사로 달라진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의료적·심리적·경제적 지원을 받을 권리
- 기억: 참사의 진실이 잊히지 않고 동시대와 후대에 계속 이어지도록 요구할 권리

[사진2]세월호참사 10주기 책 발간을 위한 기획회의. 주요 키워드 정리. ⓒ 유해정
하지만 이러한 권리는 우리 사회에서 온전하게 지지받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은 권력이 얘기하는 대로 믿고, 줄 때 까지 기다리고, 주는 대로 받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지만, 위에 나열한 구체적인 권리를 하나씩 실현하려 할 때면, 우리 사회는 앞서 언급한 '유가족다움'을 다시 꺼내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문제다.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과정에서의 결정권은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로 작용한다. "돈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금기를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 배・보상을 요구하는 순간, 앞서 제기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정의 실현의 요구마저도 “돈 때문”이라는 식으로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것도 그 칼날이 조금이라도 정권을 겨냥할라치면 "유가족이 벼슬이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조사위원회에 가해진 비난이 그랬다.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진상조사 기구의 설립과 구성에 의견을 낼 권리가 있으며, 그 조사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관하고, 조사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받을 권리의 일환이었지만,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명분 삼아, 유가족들의 요구를 흔들고 이슈의 본질을 흐렸다.

[사진3] 2024. 10. 9.. 부천화재참사 49재 추모제 때 사진. ⓒ 유해정
이런 이유에서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의 관점으로 재난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면서 "선언적 구호를 넘어 그 권리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천이 요구되는 ‘활동’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드러내는 ‘기록’의 원칙
유해정 센터장은 '기록'을 통해 피해자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는 구체적인 실천을 펼쳐왔다. 세월호 참사, 형제복지원 등 그의 기록은 철저히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해 그들의 권리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기록'은 피해자의 권리를 사회에 알리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였던 셈.
이를 위해 유해정 센터장과 센터 동료들은 이 기록물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함께 읽을까" 가장 먼저 고민한다고.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사회적 맥락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통해 그들의 기록이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거나 감동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남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이 유해정 센터장이 그들의 기록을 '활동'이라 명명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세월호 기록은 고립된 유가족과 시민들을 연결하는 가교가 됐고, 형제복지원 기록은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됐다. 동시에 사회적 반향을 지나치게 키우려는 욕심을 경계하는 것, 그것 역시 유해정 센터장과 센터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중요한 원칙이다.

[사진4] 2025경북 의성산불 피해주민 인터뷰(임시주택). 맨 왼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령 사회적으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를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태도이자,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기록’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식인셈.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는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 후의 삶까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뒤에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상을 바꾸는 기록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사회적 기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이 두 원칙을 균형 있게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의 존재다.
우선 제대로 된 질문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가 만나는 피해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대신 사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고 말했다. 그 위에서 기존에 이 사안을 다루던 방식과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계속 고민한다. 정형화된 방식으로 피해자를 소비하지 않고, 닫혀 있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한 질문을 첫만남부터 내미는 것은 유해정식 방법이 아니다. 유해정 센터장은 인터뷰를 기본적으로 최소 2번 이상 할 각오를 한다고.
첫 만남에서 준비한 자료와 질문지 꺼내는 대신, "오늘 제가 인터뷰 요청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승낙하셨어요?" 또는 "어떤 얘기하고 싶으셨어요?"라고 물으며 인터뷰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쭉 듣는다. 기록을 위해 피해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과 삶을 온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면서 안전한 대화의 장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터뷰이와의 라포(신뢰와 공감, 친밀감이 형성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준비했던 질문지를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질문지를 제대로 준비했어도,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 유해정 센터장은 질문의 기교나 대화의 기술 등에 의지하기보다는 곁을 지키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얻는다고 한다. 인터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곁에서 함께 농성하고, 시위하며 그들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이다. 함께 연대하는 시간을 거치며, 피해자들은 기록자를 자신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관찰자가 아닌, 함께 곁을 지키는 동료로 인식하게 된다.

[사진5] 10.29이태원참사작가기록단 활동 사진. 지역에서 북콘서트 후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이 모든 과정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면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인터뷰 전후, 함께 모여 질문지와 취재 내용, 기록 결과 등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공유하며 개인의 한계를 보완하고 서로 조언을 얻는다. 책의 통일성을 맞추고 각 인물의 서사가 잘 드러나도록 목차와 강조점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도 유기적인 팀웍은 필수다.
하지만 안전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다. 워낙 감정적으로 소모가 큰 일이지만, (피해자들과의 약속으로) 어디에 가서도 쉽게 얘기할 수 없어 혼자 끙끙 앓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이 때 동료들은 그 누구보다 안전하고 신뢰할만한 울타리가 돼 준다. 유해장 센터장 역시 트라우마가 큰 인터뷰를 진행한 경우에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30분에서 1시간 가량 감정과 어려움을 털어놓음으로써, 무너지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실상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도 동료들의 몫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가족분들이 화를 내고 있지 않은데,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그걸 알아차려주는 건 저 자신이기도 하지만, 동료들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런 동료들 덕분에 저는 잠시 물러설 수 있어요. 제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여전히 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사진6]2024년 11월, 416재단 성과보고회 현장에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기록에서 혼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든 기록 활동가든 시민이든요.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기록이라는 활동을 통해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서로 연결되고 연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계속 기록해보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참사의 고통이 조금 더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 : 정재훈 기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도와 흐름을 시민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가족은 유가족다워야 한다”는 프레임을 극복하는 방법
피해자를 능동적 주체이자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세우는 유해정式 기록에 대해
_ 인터뷰 : 인권기록센터 사이 유해정 활동가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에게 우리 사회는 종종 ‘유가족답게’ 행동하라는 요구를 던져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밥을 먹거나 웃는 것 같은 일상적인 행동조차 “어떻게 저럴 수 있냐”는 비난에 시달렸고, 백남기 농민의 딸은 아버지가 위중한 상황에서 가족 행사 차 떠난 여행 때문에 ‘불효자’로 낙인찍혔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들은 “노가다”, “돈 욕심”이라는 조롱 섞인 댓글에 시달리며, 대통령에게 관심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생떼 부린다”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의도적인 프레임이라고 지적한다. 유가족의 사생활이나 보상금 문제 등 자극적인 내용을 부각해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가둬, 결국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같은 '정치적 애도'로의 확장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진1] 2024.6.9 광주학동참사 3주기. 광주학동참사 피해자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 중인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정치적 애도는 슬픔을 공적 발화로 전환하는 행위에요. '왜 이 재난이 발생했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지?'를 물어 개인의 비극을 국가와 사회, 제도의 책임 문제로 확장하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기억, 진실, 정의, 안전이라는 구체적인 권리로 제도화하는 과정이죠.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고 참사를 야기한 사회적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이런 애도의 과정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어요."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묻자, “피해자들은 그런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참사의 전 과정에서 명확한 권리를 가지며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는 능동적인 주체”라며 관점의 전환을 주문했다.
기자의 질문에조차 무심코 묻어나는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시각’.
“그럼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의 권리를 드러내는 ‘기록’을 통해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충무로 소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무실을 찾아, 기록을 통해 피해자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세워 온 유해정 센터장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들어봤다.
“피해자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다”
우선 유해정 센터장이 바로 세우고 싶은 '피해자의 권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해정 센터장과 4·16재단은 <재난 및 안전사고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통해 ▲진실, ▲정의, ▲안전, ▲회복, ▲기억 등 5가지를 피해자의 핵심 권리로 제시했다.
[사진2]세월호참사 10주기 책 발간을 위한 기획회의. 주요 키워드 정리. ⓒ 유해정
하지만 이러한 권리는 우리 사회에서 온전하게 지지받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은 권력이 얘기하는 대로 믿고, 줄 때 까지 기다리고, 주는 대로 받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지만, 위에 나열한 구체적인 권리를 하나씩 실현하려 할 때면, 우리 사회는 앞서 언급한 '유가족다움'을 다시 꺼내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문제다.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 과정에서의 결정권은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로 작용한다. "돈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금기를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 배・보상을 요구하는 순간, 앞서 제기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정의 실현의 요구마저도 “돈 때문”이라는 식으로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것도 그 칼날이 조금이라도 정권을 겨냥할라치면 "유가족이 벼슬이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조사위원회에 가해진 비난이 그랬다.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진상조사 기구의 설립과 구성에 의견을 낼 권리가 있으며, 그 조사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관하고, 조사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받을 권리의 일환이었지만,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명분 삼아, 유가족들의 요구를 흔들고 이슈의 본질을 흐렸다.
[사진3] 2024. 10. 9.. 부천화재참사 49재 추모제 때 사진. ⓒ 유해정
이런 이유에서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의 관점으로 재난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면서 "선언적 구호를 넘어 그 권리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천이 요구되는 ‘활동’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드러내는 ‘기록’의 원칙
유해정 센터장은 '기록'을 통해 피해자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는 구체적인 실천을 펼쳐왔다. 세월호 참사, 형제복지원 등 그의 기록은 철저히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해 그들의 권리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기록'은 피해자의 권리를 사회에 알리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였던 셈.
이를 위해 유해정 센터장과 센터 동료들은 이 기록물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함께 읽을까" 가장 먼저 고민한다고.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사회적 맥락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통해 그들의 기록이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거나 감동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남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이 유해정 센터장이 그들의 기록을 '활동'이라 명명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세월호 기록은 고립된 유가족과 시민들을 연결하는 가교가 됐고, 형제복지원 기록은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됐다. 동시에 사회적 반향을 지나치게 키우려는 욕심을 경계하는 것, 그것 역시 유해정 센터장과 센터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중요한 원칙이다.
[사진4] 2025경북 의성산불 피해주민 인터뷰(임시주택). 맨 왼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령 사회적으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를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태도이자,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기록’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식인셈.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는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 후의 삶까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뒤에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상을 바꾸는 기록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사회적 기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이 두 원칙을 균형 있게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의 존재다.
우선 제대로 된 질문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가 만나는 피해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대신 사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고 말했다. 그 위에서 기존에 이 사안을 다루던 방식과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계속 고민한다. 정형화된 방식으로 피해자를 소비하지 않고, 닫혀 있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한 질문을 첫만남부터 내미는 것은 유해정식 방법이 아니다. 유해정 센터장은 인터뷰를 기본적으로 최소 2번 이상 할 각오를 한다고.
첫 만남에서 준비한 자료와 질문지 꺼내는 대신, "오늘 제가 인터뷰 요청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승낙하셨어요?" 또는 "어떤 얘기하고 싶으셨어요?"라고 물으며 인터뷰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쭉 듣는다. 기록을 위해 피해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과 삶을 온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면서 안전한 대화의 장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터뷰이와의 라포(신뢰와 공감, 친밀감이 형성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준비했던 질문지를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질문지를 제대로 준비했어도,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 유해정 센터장은 질문의 기교나 대화의 기술 등에 의지하기보다는 곁을 지키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얻는다고 한다. 인터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곁에서 함께 농성하고, 시위하며 그들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이다. 함께 연대하는 시간을 거치며, 피해자들은 기록자를 자신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관찰자가 아닌, 함께 곁을 지키는 동료로 인식하게 된다.
[사진5] 10.29이태원참사작가기록단 활동 사진. 지역에서 북콘서트 후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이 모든 과정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면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인터뷰 전후, 함께 모여 질문지와 취재 내용, 기록 결과 등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공유하며 개인의 한계를 보완하고 서로 조언을 얻는다. 책의 통일성을 맞추고 각 인물의 서사가 잘 드러나도록 목차와 강조점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도 유기적인 팀웍은 필수다.
하지만 안전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다. 워낙 감정적으로 소모가 큰 일이지만, (피해자들과의 약속으로) 어디에 가서도 쉽게 얘기할 수 없어 혼자 끙끙 앓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이 때 동료들은 그 누구보다 안전하고 신뢰할만한 울타리가 돼 준다. 유해장 센터장 역시 트라우마가 큰 인터뷰를 진행한 경우에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30분에서 1시간 가량 감정과 어려움을 털어놓음으로써, 무너지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실상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도 동료들의 몫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가족분들이 화를 내고 있지 않은데,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그걸 알아차려주는 건 저 자신이기도 하지만, 동료들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런 동료들 덕분에 저는 잠시 물러설 수 있어요. 제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여전히 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사진6]2024년 11월, 416재단 성과보고회 현장에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기록에서 혼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든 기록 활동가든 시민이든요.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기록이라는 활동을 통해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서로 연결되고 연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계속 기록해보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참사의 고통이 조금 더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