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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엣지ON-활동의 정석] ‘갈등’은 어쩌면 지역 성장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 제주생태관광협회 고제량 활동가

202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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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어쩌면 지역 성장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갈등을 지역 성장의 에너지로 만드는 방법
_ 인터뷰 :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장



"개발사업에 있어 행정과 기업은 늘 마을 이장이나 리더들을 먼저 포섭한 뒤, 이를 마치 공동체 전체 의견인 양 내세웁니다. 주민 전체의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분열되죠. 마을은 그렇게 권력과 자본이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장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선흘2리에서 동물테마파크 사업으로 인한 주민 갈등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 700여명 주민을 대표한다는 이장은 개발사에 포섭돼 주민 몰래 도장을 찍었다.
  • 행정은 그 도장 하나를 근거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선언했다.
  • 소수의 위임만으로 지역을 집어삼키려 하자,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다수의 주민이 항의에 나섰다.
  •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발전’을 내세우고 자기 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마을은 갈라졌다.
  • 개발사는 이 불신을 틈타 사업을 밀어붙였다.


“소수의 지도자를 포섭하고, 다수를 분열시킨다.”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 분할 통치라 불린 이 황금률은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를 다스릴 때 즐겨 쓴 방식이었다. 명시적 식민 지배가 사라진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 방식은 여전히 다른 얼굴로, 오늘날 지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선흘2리 만의 일은 아니다. 생태관광에 발을 들인 지 25년. 고제량 회장은 그 시간 동안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걸 숱하게 봐 왔다.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그였지만, 오히려 고초를 겪어야 했다. 개발 사업의 절차적 하자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위치(동백동산 람사르 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있었던 고제량 회장은, 여러 압박 끝에 결국 위원장직을 내려 놓아야 했다고. 


반복되는 패턴. 늘 당하고 마는 지역. 해결에 나섰던 이들이 겪은 고난과 시련. 기자는 왠지 모르게 답을 알 것만 같다며, 이렇게 물었다.


"그럼 결국 동물테마파크 사업도 개발이 진행 됐겠네요?“


예상과 달리, 고제량 회장은 웃는 얼굴을 하며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막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위원장직에 복귀했구요(웃음)“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고제량 회장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웃음).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말했다.


“근데 돌아보니, 어쩌면 이 갈등이라는 녀석이 지역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갈등을 겪으며 지역주민들은 공동체의 총의를 모으는 일이 왜 중요하고, 또 그것이 외부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에 사는 주민 스스로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돼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바뀌고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5일, 제주에서 고제량 회장을 만나, 갈등을 지역공동체 성장의 에너지로 만든 선흘리¹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설명1) 기사에 설명된 선흘리 이야기는 선흘1이와 선흘2리를 말한다.
* 선흘1리 : 선흘곶자왈 내 람사르습지로 분류된 동백동산
* 선흘2리 : 선흘곶자왈 내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이 있는 마을


서서히 다가오는 개발의 그림자


곶자왈. '곶(숲)'과 '자왈(덤불)'을 합쳐진 제주어로,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용암 언덕 위에 나무와 덩굴이 엉켜 자란 원시림이다.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서, 따뜻한 남쪽 지방 식물(아열대 식물)과 추운 북쪽 지방 식물(한대 식물)이 함께 자라는 곳이자, 동물 900여종, 식물 500여종의 서식지로, 환경부 멸종위기동식물 15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생태계의 보고다. 


[사진1] 제주 동백동산 습지(먼물깍) 전경. ⓒ고제량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와 선흘2리는 이 곶자왈이 매우 예쁘게 펼쳐져 있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선흘1리의 동백동산은 2010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뒤, 2011년에는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등재됐고, 선흘2리의 거문오름은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동네가 소란스러워진 것은 '동물테마파크'가 개발된다는 얘기가 들리면서부터였다. 더 정확히는, 원래는 콘도가 지어질 부지에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


"유네스코에 등재된 거문오름도 있고, 국제협약(람사르협약)에 따라 보호습지로 지정된 동백동산이 있는데도 개발이 될 수 있나?"라고 묻자, 고제량 회장은 "동물테마파크 예정 부지는 거문오름과 동백동산하고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 개발을 해도 되는 것 아닌가?"라며 조심히 묻자, "생태계는 선 하나 긋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구분할 수 없다"면서 "보호구역과 연결된 생태계에서의 대규모 개발은 수질 오염, 소음, 야생동물 서식지 단절 등을 통해 핵심 습지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환경영향평가도 문제였다. 핵심 쟁점은 15년 전에 받은 낡은 환경영향평가를 그대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새로 받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환경단체는 "원래 콘도·승마장이던 계획이 맹수 사육 동물원으로 바뀌었으니 강화된 기준에 맞춘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할 것"을 요구했지만, 제주도정은 단순 변경협의 대상이라며 기존 평가를 대부분 인정했다.


환경단체는 전염병의 위험성 등 새로운 환경 문제에 대한 검증을 피하고 사업을 더 쉽게 통과시키려는 행정편의적 결정이라 비판했다. 이 논란은 국회에서도 쟁점이 돼, 당시 환경부 장관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발언하며 환경단체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자본과 권력이 추진하는 개발 압력이 동백동산을 향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업자는 경제적 보상과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고, 행정은 빠르고 간단한 행정절차로 이를 뒷받침했다.


Divide&Rule : 분열을 유도하는 개발 압력


달콤한 제안도 제시되기 시작했다. 사업이 허가돼 삽을 뜨기 시작하면,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마을에 10억 원을 주겠다고 한 것. 마을의 발전을 돕고, 사업자와 지역이 상생한다는 취지다. 그럴듯한 취지와 확실한 보상, 거기에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 흔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특히 마을의 어른들로 불리는 리더 그룹들이 그랬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700여명의 선흘2리 주민을 대표한다던 이장²이 주민총회조차 열지 않고 사업자와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설명2)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해당 이장은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마을에서 쫓겨났고 법정에서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사업자 역시 이장에게 금품을 전달하고 마을을 분열시킨 당사자로 실형을 받았다. 


이장은 마을 발전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즉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마을 발전을 가로 막는 세력으로 비난했다. “숲이 곧 생존”이라며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과 문화적 사회적 자산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졸지에 지역 발전의 장애물이 돼 버렸다.


주민총회장에서는 고성이 오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의 "어쩔 수 없다"며 또는 "마을 발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장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공동체는 서로를 “개발꾼”, “반대꾼”이라 비난했고, 그렇게 마을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져 내리는듯 했다.


그 사이 행정은 소수 리더의 합의를 근거로 사업 추진을 정당화했고, 기업은 이 불신을 틈타 “찬성 주민의 목소리”를 강조하며 사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개발의 마지막 관문에 서게 된 고제량 회장


순항(?)할 것 같았던 동물테마파크 건설은 뜻 밖의 암초를 만난다. 바로 람사르 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 제주도의회가 사업 허가 조건으로 "위원회의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2018년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 이후 지역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행정과 기업, 주민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공식적인 협의 기구였다. 그리고 그 위원회의 수장(위원장)으로 고제량 회장이 취임하게 됐다. 


마을 이장은 물론이고 전임 위원장 역시 개발사 및 행정 측과 만나 개인적으로 합의해 준 밀실 합의가 드러난 상황에서 위원회 위원들은 개발의 논리가 아닌 지역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해 온 고 회장³을 신뢰했고 위기의 순간에 그를 선택한 것이다.


[사진2] 제주 동백동산에서 생태관광 가이드에 나선 고제량 회장. ⓒ고제량


설명3) 고 회장은 제주 관광의 구조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대안을 만들어 온 인물이었다. 1990년대 초 환경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자연을 밀어버리고 리조트를 짓고 원주민을 내쫓는 제주의 전형적인 개발 방식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2003년 ‘(주)제주생태관광’을 설립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첫째, 관광이 환경을 훼손하지 않을 것. 둘째, 외부 자본이 아닌 지역 주민이 돈을 벌 것. 셋째, 교육적·공공적 의미를 담을 것.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목적보다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관광의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외부 자본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소 대신,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민박과 마을 식당을 이용하고, 주민 해설사와 함께 제주의 역사와 생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여행을 만들어냈다.

선흘리 마을과의 인연은 2010년, 동백동산이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개별 회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정책 제안과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해 만든 ‘(사)제주생태관광협회’의 이름으로 마을에 들어갔다. 그는 “잘 보존된 자연이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주민 스스로 느껴야 한다”는 믿음으로, 주민들에게 생태관광을 제안했다. 람사르습지를 보전하는 일은 곧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일이었고, 선흘리 마을은 그렇게 15년 가까이 그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었다. 


위원장으로서 고 회장이 하려 했던 것은 단 하나. 위원회의 공공성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이전 위원장처럼 밀실에서 합의해주는 대신, "우리는 반대한다. 밀실 협약이란 없다"는 위원회의 총의를 모아,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개발의 걸림돌이 된 고 회장은 그렇게 행정과 기업으로부터 단단히 찍히게 된다. 고 회장을 향한 노골적인 압박이 시작된 것. 제주도와 제주시의 고위 공무원들이 직접 찾아와 "위원장 그만둬야 되지 않냐"며 사퇴를 종용했다. 심지어는 그의 개인 페이스북까지 사찰하며, 동물테마파크뿐만 아니라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게시글을 문제 삼았다. 행정은 이를 "편파적인 정치 성향"으로 규정하고, "이런 사람이 어떻게 위원장이 될 수 있냐"며 고 회장의 자격을 흠집냈다.


주민들의 총의를 모아 부당한 개발을 저지하려 했던 고 회장은 자본과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의 표적이 되어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갈등, 지역 성장의 에너지가 되다


소식을 전해듣자 들고 일어난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위원장을 부당하게 찍어냈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까지 번졌고,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행정은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결국 고제량 대표는 위원회의 공식적인 복귀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위원장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제량 회장은 "돌아보면, 갈등 때문에 서로 상처도 입고 힘들기도 했지만 잠잠하던 마을에 어떤 각성제 역할도 한 것 같다"면서 "각성한 지역 주민들 덕분에 위원장직에 복귀할 수도 있었으며 나아가 개발 저지 활동도 어느 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고제량 회장과 주민들은 개발이 지역을 집어삼키는 방식과 완전히 정반대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 제대로 된 정보를 모두에게 공개했으며,
  • 주민 모두에게 발언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견과 갈등을 피하지 않았다.


우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의사결정 주체인 주민 모두에게 응당 제공해야는 당위적 차원을 넘어, 주민들 사이에 오해와 불신을 막기 위한 적극적 대응의 일환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회나 간담회를 열어 주민들을 기다리기보다는 부녀회, 노인회, 청년회 등 기존 마을 조직을 일일이 방문하는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이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접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3]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원탁회의. 고제량 회장과 마을주민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토론 중이다. ⓒ고제량


10명씩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원탁회의를 진행한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덕분에 구성원 모두에게 발언권이 제공될 수 있었고, 전문가가 다수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내용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 사이의 토론을 통해 숙의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됐다.


토론 과정에서 이견 또는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 공론화했다 "그러다 갈등이 격화되면 어떡하나"라고 우려하자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과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져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고제량 회장과 마을주민들은 2010년 동백동산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후, 주민역량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일상처럼 경험한 주민들은, 이를 통해 공동체 변화를 이끌어낼 단단한 내공을 쌓아갔다. 수동적인 참여자가 아닌 마을의 주체로 거듭나며, 참여와 숙의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정확한 정보만 공유되고 많은 주민들만 참여한다면 판을 엎을 만큼 갈등이 커지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까지구나' 하는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민들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갈등을 오히려 부각시키고 키워 동백동산을 둘러싼 이슈가 제주를 넘어 국내외에서 주목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든 것도 고제량 회장과 주민들의 역량이었다.


주민들은 동물테마파크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위원장이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주민의 권리 침해 문제’로 비화했고, 국가인권위가 사건을 다루면서 제주도정과 사업자들이 받는 부담은 점점 커졌다. 국제 사회에도 알렸다. 이들은 제주 사례를 국제 람사르총회에 보고하며, “보전 지역에서조차 주민 동의 없이 개발이 추진되는 모순”을 국제적으로 공유한 것이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언론 및 여론의 압력,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그리고 국제적 시선까지 겹치면서 개발사는 사실상 더 이상 사업을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동물테마파크 사업은 좌초되고 말았다.


가장 큰 ‘이문’을 지역에 남기고 싶다


개발을 저지한 것에 크게 감동하고 있던 기자. 


고제량 회장은 기자에게 “개발을 ‘막았다’ 라는 결과 못지 않게 더 중요한 성과가 있다”면서 “사회적협동조합 선흘곶’ 이야기까지 들어야 마무리가 된다”며 웃어보였다. 


사회적협동조합 선흘곶은 갈등과 대립이 한창이던 2018년 만들어졌다. 분열의 씨앗이 될지도 몰랐던 당시의 갈등 속에서 선흘1리 주민 200여명은 원래 한 마을이었던 선흘2리에서 벌어진 동물테마파크 개발해 반대하며, 마을의 자산인 동백동산과 그 일대를 지켜내겠다며 뜻을 모았다. 동물테마파크 개발에 반대한 200여명의 주민들은 조합원으로 참여해 생태관광을 운영하며 동백동산과 그 일대를 지켜내기로 나선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 선흘곶은 동백동산 습지센터 운영을 위탁받는 한편, 주민이 직접 해설사로 참여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 마을의 중요한 수입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수익으로 동백동산을 가꾸는 것은 물론 어르신 생일 선물과 마을 주요 행사를 지원하고, 앞으로 마을이 돌보는 요양원을 설립하려는 계획도 품었다. 마을이 친 자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에 맞춰 폐교 직전이던 학교에도 1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소리로 본교 승격 등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그렇게 조합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관광 수익 → 주민 복지 → 환경 보전'식 선순환 구조와 대안 앞에 “개발이 아니면 안된다”는 낡은 논리는 설 자리를 잃었다. 


[사진4] 곶자왈에서 생태관광 가이드를 펼쳐보이는 고제량 회장(왼쪽에서 세번째). ⓒ고제량


선흘1,2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고제량 회장이 함께 만들어온 마을의 소중한 자산에 대해 고제량 회장은 "사실 새로울 건 없는 얘기다"라면서 "아마 많은 활동가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들이 현실에서 더 많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 회장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만 보면 단 몇 분만에 읽히는 일이지만, 사업 추진이야기가 나오고 사업이 중단되기까지 짧게 보면 5년, 길게 보면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고제량 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흘곶 사회적협동조합을 가리키며 "그래도 최소 10년 이상은 지역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신뢰를 쌓고, 갈등을 통해 공동체가 자라는 걸 돕는 일은 단시간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래 걸리지만 만들기만 해 놓으면 이게 더 남는(?) 장사일지도 모른다"고 고제량 회장은 설득한다.


"뭐가 더 많이 남느냐"고 묻자 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사람이죠(웃음). 사람만큼 크게 남는 장사가 어딨어요.“


활동가가 언젠가 지역을 떠나더라도 외부의 힘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지역공동체. 그게 바로 고 회장이 말하는 큰 '이문'이었던 것. 


그의 목표는 언제나 같았다. 언젠가 자신이 없어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하는 것. 그런 그에게 제주 선흘1,2리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자립시스템으로서의 사회적협동조합 선흘곶은 엄청 큰 이문이었다고.


[사진5] 제주 조천읍 습지에서 생태관광에 나선 시민들과 함께하는 고제량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고제량


"제대로 된 조직 하나를 만드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엮어내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한다면, 저같은 사람들은 이제 다소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는 거죠. 활동가가 떠나도 스스로 잘 유지되는 공동체를 보며 우리도 비로소 한숨을 돌리게 되니까(웃음). 힘들겠지만 우리 조금만 더 버텨봅시다."


인터뷰어 : 정재훈 기자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도와 흐름을 시민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