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비영리 생활 5회차 모임


#. 북클럽 이름 : 영리한 비영리 생활


#. 모임 일시/장소 : 2025. 11. 14.(금) 12:00 ~ 13:00 / 서울본부 회의실


#. 참여자 : 지현, 수연, 이슬, 다영


#.  사진 (2장) : 검은색 라인 메뉴 중 사진버튼 클릭


#. 진행 내용 (운영자)

<고통 구경하는 사회> 뒷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발제자가 준비한 발제문에는 "인간은 왜 어떤 고통에는 즉각 반응하면서, 어떤 고통은 아예 느끼지 못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각자 무감한 고통(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왜 그런지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참여자 회고 한마디씩

지현 - 후반부를 읽으며 '닮음'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인간은 나와 닮은 사람에게 끌리고,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그래서 나와 닮지 않은 사람, 공동체, 세계에는 무감해지기 마련이다. 언론에서는 시청자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남일이 아니다', '우리네 모습이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매일 뉴스를 가득 채우지만 지역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아주 자극적이거나 놀랄 만한 정도는 되어야 눈에 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1인으로서 지금까지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은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몰랐다라는 표현보다는 무감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책을 마무리하며, '나와 닮음'의 바운더리를 넓혀 보고자 한다. 여러 사회 이슈에서 나와의 연결점을 찾고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넘어 내가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 접해 보기로 한다. 옥천신문 같이 지역 내 신문사 기사도 접해 보고, 펭귄뉴스처럼 기후, 특정 분야에 관련된 뉴스도 찾아보며 시야를 넓혀 보면 좋겠다.


수연 - (발제문 발췌)  눈앞의 한 사람을 돌보는 실천을 계속해야 하지만, 그 돌봄이 구조적 고통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구조적 변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고통이 다시 추상적 개념으로 희석되지 않도록 구체적 얼굴을 확보해야 한다. 김인정의 후반부 문제의식은 바로 이 이중초점을 요구한다. 가까운 고통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감각은 자연스러운 한계이지만, 그 한계를 자각하고 확장하려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윤리적 실천이 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고통은 왜 더 쉽게 우리를 움직이는가, 이 감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고통을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구조적 고통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무엇인가, ‘연대’라는 말이 고통 소비의 면죄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어디까지이며,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윤리일까, 넘어서려는 것이 윤리일까?”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언론 비평을 넘어, 우리가 타인의 고통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고통을 ‘보는’ 윤리에서 멈추지 않고, 고통을 ‘함께 감당하는’ 실천으로 나아가자고 조용히 요청한다. 고통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다듬고, 구조적 고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야를 넓히는 일—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의미 있는 연대의 자리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슬 -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책에서는 가까운 사람의 고통에는 민감하지만, 멀리 있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의 고통에는 둔감해지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사회적인 구조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돕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고통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다영 - 앞서 고통을 단순히 소비하고 마는 풍토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후반부에는 우리가 고통을 목격하고 어떻게 임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다. 결론은 각각의 개별적 고통을 '소비'하지 않고 '응시'하되 사회구조적 고통에 대해서도 감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결국은 모든 곳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가오면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전에 읽었던 '연루됨'에서 말하는 '연루됨에 대한 감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있음을 늘 상기하며, 곳곳에 '정제된' 관심을 던져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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